지난 겨울, 큰 화제를 얻었던 서바이벌 프로그램 <현역가왕2>에서 TOP3라는 성적을 거두신 정용훈 동문(98학번, 커뮤니케이션(구 언론정보문화)학부)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Q.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98학번 언론정보문화학부를 졸업한 에녹 혹은 정용훈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Q. 올해로 18년 차 뮤지컬 배우로도 활동하고 계신데, <현역가왕2> 이후 주변 반응은 어땠나요?
뮤지컬과 연극할 때보다는 많은 분들이 알아봐 주시니까요. 특히나 어르신분들께서 많이 좋아하시죠. 시장이나 음식점에 가도 그렇고요. 인사드리고 또 좋아하시는 모습 보고, 같이 사진도 찍고 그러면 기분이 좋고, 또 감사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Q. 동문님께 한동대학교는 어떤 의미인가요?
저의 20대가 여기에 고스란히 묻어 있잖아요. 저한테는 고향 같은 곳이거든요. 학교가 고향 같다는 게 참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을 텐데, 진짜 그래요. 포항에 오면 향수에 젖고, 뭔가 리프레시 되는 것 같고. 위로받는다는 기분을 받아요. 저는 1년에 그래도 한 번씩 아니면 2년에 한 번씩은 꼭 학교에 찾아와요. 찾아와서 사실 강연하는 지금 같은 기회를 가졌던 건 아니고 그냥 학교 한 바퀴 돌고 갑니다. 저희 도서관(오석관)도 들어가보고, 졸업하고 나서 학교에 와서 그렇게 돌아보는데, 저한테 그게 뭔가 휴식도 되고 쉼도 되고 힐링이 되고, 위로가 되는 거예요.
저는 사실 학교 다닐 때 굉장히 부정적인 생각들을 갖고 있었던 사람이었었는데, 근데 학교를 떠나고 나니까 ‘아, 내가 이런 부분에 도움을 많이 받았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중에 가장 컸던 것들은 교수님들과의 기억입니다. 제3학년 때입니다. 그때 구자훈 교수님이라는 분이 계셨어요. 저는 구자훈 교수님 팀이었었고, 팀 모임을 했습니다. 교수님께서 어느 날은 본인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그냥 여과 없이 꺼내시는 거예요. 어찌 보면 학생들에게는 그 이야기가 본인에게 흠이 될 수 있었던 이야기였습니다. 가족에 대한 이야기였거든요. 그런 이야기를 하시면서 눈물을 흘리셨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도 크리스천으로서 어떻게 삶을 살아야 하는지 고민하시는 그 어른의 모습을 봤습니다. 저한테는 그냥 당연하게 높으신 교수님이셨다가, 어느 순간 그때는 어른으로 보이더라고요. 그 눈물을 펑펑 우시면서 하셨던 그 말씀, 그 고백이 제가 다른 어디 가서 들을 수 있었던 수업보다 굉장히 값졌습니다.
우리 학교 교수님들 참 대단하신 게, 아마도 여러분들께서도 사회 나가시면 아시겠지만, 하는 일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해요. 그런데 누구한테 그거를 가서 내가 모르는 어떤 학생, 남인데 가족처럼 돌보고, 뭔가 이야기를 하고 그 사람의 삶에 관여하고. 그렇게 살아보십시오. 정말 어렵습니다. 정말 못하는 거예요.
그런데 그랬던 어른들과의 시간들이 여러분들에게 살아감에 있어서 나중에 정말 큰 힘이 될 겁니다. 저는 제가 사랑을 굉장히 많이 받았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리고 관심을 가져주세요. 이 학생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말입니다. 정말 어려운 거거든요. 제가 어른이 돼서 사회에 나가고 보니까 더 그렇더라고요.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그렇게까지 신경 쓰기가 어려운데, 대체 이분들은 무슨 사명감으로 이렇게까지 하시는 걸까요.
사랑받았다는 것 안에는 그중의 하나가 ‘기대감’이거든요. 제가 있을 때는 김영길 총장님께서 살아계셨고요, 김영애 사모님은 지금도 계시는데, 예전에도 제 이름을 기억해 주셨어요. 그리고 늘 해주시는 말이 ‘축복한다, 기대한다, 사랑한다.’ 이런 표현을 늘 해주셨거든요. 제가 배우 무명 시절일 때도 실력은 좀 없고, 아무도 날 기대하지 않는 그런 분위기 속에서 어떻게든 버텨야 하고, 그런 와중에도 이상하게 마음 한편에 ‘그래도 나 우리 학교 총장님께서, 총장님과 사모님께서 기대하는 사람이야.’ 그런 마음이 있더라고요. 그리고 언젠가 내가 주인공이 되면, 꼭 그분들을 모셔야겠다는 욕심도 있었어요. 그렇게 기대감을 받았던 것이 버틸 수 있었던 또 다른 힘이 되었었고, 나중에 시간이 지나고 어떤 공연에서는 두 분을 초대하기도 했었습니다. 똑같았어요. ‘축복한다, 귀하다.’ 어떻게 그렇게 한결같으신지 몰라요.
Q. 한동대학교만의 특별함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저희가 ‘Why Not Change the World’라는 슬로건 아래 인성, 영성, 지성을 중요시하잖아요. 그런 걸 토대로 교육을 한다는 점이 사실 그때는 그렇게 크게 와닿지 않았어요. 졸업하고 5년이 지나고, 10년이 지나고 보니까, ‘이런 시간들이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내가 사회에 나가서 한동인으로, 그래도 크리스천으로서 어떻게 살아가려고 하는 기준점이 되는구나’하고 느낄 수 있었어요. 여러분들께서 가장 궁금해하시는 것들 중 하나가, ‘한동에서의 경험이 사회에 나가보니 도움이 됩니까?’였어요. 대부분 그렇게 질문들을 많이 하시는데요. 네, 도움이 되더라고요. 다른 분야는 모르겠어요. 그런데 제가 있었던 분야에서는 굉장히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한동에서는 참 많은 실패들을 경험했습니다. 공연을 망친 적도 있고요, 언제까지 안무를 해야 되는데 그걸 못 했던 적도 있고요. 그 안에서 이게 옳으니, 저게 옳으니, 이게 신앙 중심으로 가야 된다, 이건 세속적이고 이런 것들로 매일 싸우기도 했고요. 그런데 그랬던 과정들 속에서 리더십을 세워주기도 하고, 언젠가는 또 받쳐주기도 하고, 그랬던 것들이 사회에 나와서, 제가 하는 활동들에 있어서는 굉장히 도움이 많이 되더라고요.
한동은 온실 속의 화초라는 얘기들을 하잖아요. 그런 얘기들 많이 했는데, 요즘에도 하고 있나요? 저희 때도 그런 얘기들 많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기, 저의 정체성과 가치관이 형성될 수 있었던 이 시기에, 한동이라는 문화 틀에서 아너 코드를 경험하고요, 저랑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어른분들을 만나서 지금의 생각을 공유하고 그분들의 생각을 들을 수 있었던, 그리고 억지로라도 크리스천 문화에 노출될 수 있었던 것이 저에게는 이런 것들이 축복이었어요. 한동에서의 시간들은 ‘스며듦’ 이었어요.
순간순간 어떻게 하면 크리스천으로서 그래도 지켜내면서 뭔가를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하는 것조차가 한동에서 있었던 시간들 덕분이지 않나 생각을 합니다. 배우로서 살아보니까 지금 잘 되고, 안 되고 가 그렇게 삶의 방향에 영향이 크지 않더라고요. 그냥 내가 무대를 섰을 때 그 한순간에 보이는 그 모습으로 인해서 보신 분들이 하루의 힘듦이 잊어지고 조금 더 기쁘고 행복할 수 있는, 계속 그럴 수 있는 그런 사람, 그런 가수, 그런 배우로 남을 수 있으면 가장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