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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에서 배웠던 가치와 정체성을 바탕으로, 발로 뛰는 언론인이 되신 심인보 동문(97학번, 커뮤니케이션(구 언론정보문화)학부)님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Q.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한동대학교 언론정보문화학부 97학번 졸업생이고 KBS에서 아나운서로 근무를 하고 있는 심인보입니다.

Q. 입시를 준비할 당시 한동을 어떻게 알게 되셨고 한동을 선택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고3 때 제 짝이 갑자기 카세트 테이프 하나를 주는 거예요. "나는 생각이 없는데 인보 너는 관심이 있을 것 같아" 그러면서 들어보라는 거예요. 그래서 공부하면서 몰래 들었는데 그게 그 친구가 다니는 교회에 김영길 총장님이 오셔서 간증을 하시고 나눠준 카세트 테이프였어요. A면에는 총장님의 간증이 있고 B면에는 학생들의 목소리와 아카펠라 동아리의 공연이 담겨 있었는데, 공부하면서 그거를 듣다가 갑자기 눈물이 주르륵 흐르는 거예요. "아, 이 나라, 이 땅에 내가 가야 할 곳은 이곳이구나" 그래서 담임 선생님한테 말씀을 드렸죠. 저는 한동대학교를 가겠습니다.

그랬더니 담임 선생님이 원서를 안 써주시는 거예요. 이 학교가 지방대고 선배도 없고 재단도 없어서 네가 군대 갔다 오면 없어질 수도 있다는 거예요. 저희 부모님한테도 말씀을 드리고 부모님도 한동대학교 소망을 품고 같이 선생님을 찾아뵙죠. ‘인보 재수해서라도 갈 겁니다’ 라고 말씀을 드리니까 마지못해 원서를 써주셨고 그렇게 수능을 보고 합격을 해서 97학번으로 입학을 했습니다.

Q. 한동에서 방송국을 만들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저는 고등학교에서도 방송반 활동을 했거든요. 그때는 PD였고 부국장으로 활동을 했는데 한동대학교 입학을 하고 와서 보니까 방송국이 없는 거예요. 그런데 교수님들한테 여쭤봤죠. 왜 방송국이 없습니까? 신문사는 있는데, 왜 방송국이 없나요? 그때 교수님들이 네가 만들어라 그러시더라고요.

그래서 1학년 마치고 저는 군대를 갔다 왔는데 군대를 다녀와서 방송국을 만들어야겠다라고 생각을 한 거예요. 그 당시에 수업 중에 프로젝트가 있었어요. 라디오 방송을 기획하고 실제로 이게 방송으로 나가면 교수님이 A를 주겠다라고 하셨거든요. 그런데 저희가 맡았던 이 프로젝트가 포항 극동방송을 통해서 전파를 타게 됐어요. 그래서 저희는 이제 A를 받고 그 팀들이 모여서 우리가 이렇게 수업으로 끝낼 게 아니라 한동대학교 안에서 방송국을 만들어보자. 해서 이제 공지도 하고 함께 하고 싶은 사람 모이세요. 해 가지고 PD 기술 아나운서 뭐 이렇게 리포터 모여 가지고 만들었죠.

처음에는 총학생회 사무실에 한 편의 구석에서 이렇게 그냥 밖으로 안내방송하는 앰프로 시작을 했어요. 점심시간에 음악방송도 하고 사연도 전해주고 했었는데 나중에 그게 학교에 요청을 해서 공간도 받고 기자재도 지급받고 해 가지고 HUB에 전신이 됐고 이어가게 됩니다. 저는 그래서 HUB에서 기수는 없어요.



Q. 교내 방송국에서 PD생활을 하면서 제일 기억에 남는 일이 있으신가요?

사실 제일 기억에 남는 건 포항 극동방송에서 매주 토요일마다 방송을 1시간씩 했던 거예요. 학생들이 기획하고 제작해서 실제로 그게 전파를 타고 나간다라는 게 굉장히 짜릿하고 흥미로운 경험이었거든요. 다 모여 가지고 기획하고 팀이 있었어요. 팀별로 아나운서도 계속 회마다 바뀌었고 봄에서 시작해서 가을에 가을 개편도 한번 해보고 시간대도 옮겨보고 당시에 한동대학교 학생들의 목소리를 담고 또 교수님들의 전문성 있는 인터뷰도 싣고 그래서 포항 시내 중고등학생들이나 또 교인들을 대상으로 좀 다양한 소식들을 전하기 위해서 노력했는데 또 포항 시내를 왔다 갔다 해야 되는 어려움이 있었는데, 교목실에서 차량도 지원해 주셨었어요. 감사하게. 활동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Q. 교내 방송국에서는 PD생활을 하셨는데 이후 아나운서로 진로를 변경하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저는 고등학교 방송반에서도 PD였고 대학교에서도 PD였기 때문에 당연히 제가 방송국을 가면 PD로 지원을 할 거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 당시에 한동대학교 제가 3학년 2학기쯤에 전국적으로 대학생 토론대회가 붐이 일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우리 학교에도 설득 커뮤니케이션, 스피치 커뮤니케이션 이런 강의도 개설이 되고 그래서 우리가 전국대회에 출전을 했죠. 많은 팀들이 가서 출전을 했는데 한동대학교가 많은 성과도 얻었어요.

무슨 일이 있었냐면 우리는 포항에서 보통 서울로 대회를 하러 가야 되니까. 캐리어에 짐을 잔뜩 싸 가지고 이렇게 가잖아요. 그 안에 갈아입을 옷도 있어야 되고 드레기도 있어야 되고 씻을 것도 있어야 되고 그런데 한동대학교 학생들이 점점 잘하고 성적 우수하게 내고 소문이 나기 시작하니까 다른 학교 학생들 사이에서 저 캐리어에 다 자료가 들어있대. 이런 소문들이 막 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한동대학교 학생들은 자료를 엄청 많이 가지고 다니는데 이렇게 소문도 나고 그 정도로 한동대학교가 토론에서는 좀 앞서갔습니다. 저도 토론에 굉장한 재미를 느꼈었고 그렇게 다른 대회를 참가하다 보니까 우리 한동대학교 안에도 재학생들만을 위한 토론대회가 있어야겠다라고 생각해서 그 당시 언론정보문화학부 학생들과 같이 제1회 한동 아카데미식 토론대회를 만들었죠. 그래서 우리 학생들이 직접 출전할 수 있게 하고 교수님들이 심사도 봐주시고 총장님이 또 시상도 해주시고 그렇게 이제 토론에 재미를 붙여가고 있던 중에 저희 지도 교수님이 “야 너는 아나운서를 한번 해봐라 그러시더라고요. 교수님 저는 PD 생각하고 있었는데요. 그랬더니 아니야. 아니야. 너는 아나운서 한번 해봐.”

교수님이 학생의 미래를 가지고 농담을 하지는 않으셨을 텐데 아나운서? 그러면서 거기서 그치지 않으시고 스피치 학회를 통해서 아카데미도 소개를 해주셨어요. 상담을 받아봐라. 그러면서 제가 아나운서에 대해서 조금씩 조금씩 준비를 하고 알아가게 되면서 KBS에 합격을 하게 된 거죠. 교수님께서 학생의 어떤 관심과 재능을 잘 봐주셨던 것 같아요.



Q. 한동에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너무 많아요. 아마 대부분의 한동대학교 학생들이 다 그럴 텐데 하나를 꼽기 어려울 정도로 굉장히 많아요. 저는 언론정보문화학부 전공을 했기 때문에 2학년 때는 광고 공부를 위주로 했고 3학년 때 연기, 연극 공부를 많이 했어요.

그리고 4학년 때 들어서서 앞서 말씀드린 토론 대회를 많이 했었는데 강두필 교수님, 이문원 교수님, 김현종, 신순철 교수님 이런 교수님들을 통해서 굉장히 특화된 교육들을 받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방학 때도 광고 공모전도 가고 참석도 하고 출전도 하고 그리고 연기 연극할 때는 모여서 준비도 하고 그래서 영어 뮤지컬 춘향송이라고 그 공연에 제가 이몽룡 역할을 하기도 했었고요. 그리고 토론대회를 앞서 말씀드린 대로 전국대회도 가고 우리 한동대학교 교내 토론대회도 만들고 교내 토론대회 기억이 굉장히 좋아요. 외부에서 협찬도 많이 받아오고 교수님들한테 심사위원 부탁도 하고 학생들 많이 참여할 수 있도록 독려하고 실제로 그거를 진행하고 많은 학생들의 도움이 있었는데, 그 기억이 또 많이 나고요.

앞서 말씀드렸던 한동 방송국을 만들고 하나씩 하나씩 방송을 한 주 한 주 만들어가면서 겪었던 경험들도 굉장히 특별했고요. 그리고 저는 2002년도에 학교에 있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가까운 대구에 가서 한일 월드컵 미디어 자원봉사를 했어요. 그래서 기자들이 많이 취재를 하러 오잖아요. 그러면 우리 미디어 부스에서 그 기자들도 안내하고 하는 자원봉사를 할 수 있었고, 대구 월드컵 스타디움에서 열렸던 경기도 볼 수 있었고, 그것도 한동이 있으면서 가능했었던 추억이고요. 굉장히 많아요. 아 맞아요. 그리고 저는 한동 다니면서 드럼을 반주했거든요. 그래서 강물 예배라고 지금도 있나 모르겠는데 강물 예배에 반주팀으로 소속해 있어서 드럼 연주하고 또 CCM 락 밴드 리퀴드라고 있었어요. 리퀴드 드러머로 있으면서 공연도 많이 하고 좀 어떻게 보면 학업, 공부보다는 이런 활동에 조금 더 많이 집중했었나 이런 생각이 드네요.



Q. 한동이라는 경험이 동문님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아마 많은 졸업생들이 그럴 텐데 그냥 정체성인 것 같아요. 한동이 저의 정체성을 규정해주는 게 상당히 많아요. 왜냐하면, 제가 KBS에 입사를 하고 처음으로 아나운서실에 선배들한테 인사를 드리러 갔을 때 제일 처음 받는 질문이 그거였어요. 네가 한동대 나왔구나. 네가 한동대 졸업생이라며 이런 질문을 제일 많이 받았어요.

그러니까 우리 애도 한동대 보내고 싶은데 거기는 어떠니? 아니면 내가 아는 사람이 한동대 다니던데 아니 이렇게 한동대라는 하나의 정체성과 저와 많이 연결을 시키시더라고요. 그리고 그 이후에도 한동대 동문들을 만나게 되면 너무 반갑죠. 그리고 내가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한동대 나왔어. 그러면서 이 사람들이 참 좋더라. 나 계속 한동대 사람들이랑 일하고 싶어. 이런 분들도 많아지셨고요. 한동대와 저의 어떤 사회생활 시작점을 보면 같이 출발을 해서 지금도 최근에도 제가 인터뷰를 하면서 만나는 분들이 한동대 나오셨어요. 제가 아는 분들도 같이 한동대 나와서 일하고 있어요. 이런 분들이 되게 많으세요.

그래서 한동대를 아는 분들에게 저는 관심의 대상이었고 한동대를 모르는 분들에게는 호기심의 대상인 거예요. 그래서 지금까지도 졸업한 지 몇 년 지났다고는 얘기는 안 하겠지만, 상당한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한동대에 대해서는 저와 정체성을 같이 하고 있다. 그렇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Q. '소화제'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시면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으신가요?

일단 KBS 창원에 제가 근무를 할 때 만들었던 프로그램이거든요. 당시 저는 닥터심이라는 하얀 의사 가운을 입고 나오는 캐릭터였는데 지역 방송의 아나운서가 그렇게 캐릭터를 갖기가 쉽지 않거든요. 그런데 좋은 프로그램을 일단 만났고 그 프로그램은 한국방송대상을 받을 정도의 아주 좋은 프로그램이었어요. 소화제라는 이름이 소소한 일들에 대해 화끈한 해결책을 제시해 드립니다. 그러니까 소화불량을 일으키는 가볍지만 불편한 사회 문제들에 대해서 해결책을 제시해보자 라는 프로그램이었거든요. 그래서 기억에 남는 아이템은 시골에 계신 할머니들이 재래식 화장실 때문에 많이 불편해하세요. 관절도 안 좋은데 쭈그려 앉아야 되고 시골 놀러 오면 냄새난다고 그러고 싫어하고 그래서 그 재래식 화장실을 다니면서 플라스틱으로 된 모형 양변기를 놔드렸어요. 그리고 그 안에 퍼드리고 또 벼씨를 통해서 냄새 안 나게 해드리고 그렇게 하면서 할머니들이 굉장히 많이 좋아하셨어요. 그리고 손자들이 실제로 왔을 때도 일단은 화장실의 모양 자체가 달라졌잖아요.

양변기가 생기고 그냥 자기들이 앉아서 일을 볼 수 있으니까 거부감도 줄어들고 굉장히 보람을 많이 느꼈던 순간이고 또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학교들의 교가가 있는데, 대부분 일제시대 때부터 생긴 것들이 많더라고요. 오래되면 오래될수록. 그래서 학교와 동문들, 재학생들의 동의를 얻어서 그 교가를 바꿔드렸어요. 가사는 학생들이 쓰고 곡은 인기 가수 김현철 씨가 작곡을 해주시고 해 가지고 교가 변신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교가를 만들어 드렸을 때 아주 많이 좋아했던 그런 기억도 있고 좀 가벼운 아이템은 배달 그릇을 씻어서 내놓자 이런 것들. 그래서 많이 사회적으로 이슈가 될 만한 것들을 캠페인성으로 했던 그런 방송인데 어떻게 보면 지금 유튜브 시대에 짧은 영상으로 많이 제공을 했으면 더 화제가 됐을 법한 시대를 앞서간 그런 프로그램이었다. 생각을 하네요.



Q. 언론인으로서 이루고 싶은 비전이 있으신가요?

저는 입사할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정직한 언론인이 되자"가 제 모토고 또 하나는 밝고 좋은 소식을 많이 전해드리고 싶다 이런 생각이 들어요. 실제로 제가 KBS 창원에서 라디오 코너를 할 때 오아시스 뉴스라는 코너를 만들었거든요. 제가 직접 원고도 쓰고 진행도 하는 코너였는데 세상에 미담과 좋은 소식들로만 한번 뉴스를 만들어 보자. 그랬을 때 사람들이 보통 황색지라고 해서 자극적이고 이렇게 좀 가십거리가 되는 뉴스들을 사람들이 좋아한다라고 생각을 하잖아요. 그런데 이런 미담과 선한 소식도 좋아할 것이다. 라는 생각으로 프로그램을 만들었던, 코너를 만들었던 적도 있습니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조금 사건 사고보다는 미담과 좋은 소식을 좀 더 많이 전해드리고 싶다라는 생각하고 있어요.

Q. '크리스천' 언론인과 다른 언론인 사이의 다른 점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기준이라고 생각해요. 세상이 너무 빠르게 변하고 있잖아요. 그런데 변하지 않는 기준을 우리는 갖고 있다는 거죠. 아무리 세월이 지나도 시대가 변해도 변치 않는 기준을 우리가 갖고 있기 때문에 그 기준으로 세상을 보고 그 기준으로 사람을 대하고 그 기준으로 사건을 본다면 분명히 다르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해요.

Q. 언론인을 진로로 고민하는 한동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으신가요?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언론인의 자질은 정확히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호기심 그리고 또 하나는 경천애인. 호기심이 많은 분들이 언론인으로서 적합한 것 같아요. 생활 모습이나 사회 현상이나 아니면 사람을 봤을 때 좀 궁금해하는 거 어? 저거는 왜 저렇지? 아니면 저 사람은 왜 그럴까? 이렇게 호기심이 많고 궁금한 게 많아야 내가 질문을 할 수 있거든요. 그런데 아나운서가 묻지 않으면 기자가 묻지 않으면 시청자들은 들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좋은 질문을 할 수 있어야 되고 그러려면 좀 호기심이 많아야 된다라는 거. 그리고 경천애인은 그야말로 하늘 무서운 줄 아는 사람 그리고 사람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기본적인 자질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일단 사회생활을 시작을 하면 경험을 하기가 쉽지 않아요. 일단은 출퇴근이라는 게 생기고 휴가도 1년에 짧은 기간밖에 없기 때문에 대학에 계실 때 보다 넓은 그런 경험을 많이 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입니다.

Q. 한동 입학을 고민하는 고3 수험생들에게 응원과 추천의 말 부탁드립니다.

한동은 유일한 미션스쿨입니다. 저는 고3 때 한동대학교에 대해서 알게 되었을 때 한동의 아너 코드, 무감독 양심시험, 그리고 무전공, 무학부 입학, 그리고 복수전공 이런 거에 매력을 많이 느꼈어요. 그 당시에는 다른 학교에서 이렇게 하는 데가 잘 없었거든요. 물론 지금이야 이렇게 하는 데가 많지만 제가 한동대학교를 들어와서 체험을 하고 경험을 해보니까 앞서 말씀드렸던 그런 매력 외에도 팀 제도, 소수, 근로의무, 사회봉사 이런 제도들이 굉장히 학생들에게 도움이 많이 되더라고요. 일단은 팀 제도와 소수 전공이라는 것이 앞서 말씀드렸던 교수님이 학생들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실 수가 있어요.

이 학생이 정말 잘하는 게 뭐고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그게 결국 진로까지 이어지거든요. 바로 저처럼. 그런 스승님을 여기서 만날 수 있다는 것도 그렇고요. 또 사회 구성원으로서 사회봉사와 근로 의무를 통해서 내가 어떻게 기여하고 봉사해야 되는지를 몸소 느끼게 되고 또 기숙사 생활하면서 보통 요즘 집에서 혼자 자라는 경우가 많잖아요. 여기서 2명, 3명, 4명 부대끼면서 서로 내가 무엇을 양보해야 되고 무엇을 맞춰가야 되고 하는 작은 사회생활을 미리 할 수 있다는 거. 그래서 한동에 와서 느꼈던 매력이 더 많았다. 그래서 한번 여러분도 경험해 보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Q. 마지막으로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한 학기를 마치고 우리는 이제 다 각자의 지역으로 돌아가는 학생들이 많잖아요. 그래서 전세버스를 많이 대절을 해줘요. 총학생회에서. 그러면 쭉 교문 앞에 버스들이 서 있고 학생들이 앉아 있습니다. 출발을 기다리면서 갑자기 김영길 총장님이 불쑥 차에 오르세요. 그리고 맨 뒷좌석으로 가시더니, 거기부터 한 명 한 명 학생들의 머리를 쓰다듬으시면서 한 학기 동안 고생했다. 건강하게 잘 다녀오너라. 그러면서 또 다음 차, 또 다음 차... 대한민국에, 아니면 전 세계에 총장님한테 그런 인사를 받는 학생들이 있을까요? 저는 잘 없을 것 같아요.

총장님과 교수님과 그리고 교직원 여러분들에게 학생들은 그런 관심을 받았기 때문에 우리는 사회에 더 당당하게 나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우리를 믿고 지지해주는 스승님들이 계시다. 그리고 학교에 상상 우리를 기다리고 계시는 선생님이 계시다라는 게 얼마나 든든하고 힘이 되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그때 총장님한테 드렸던 인사로 마무리 하려 합니다.

"집에 잘 다녀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