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인터뷰에서 ‘소통의 가치’를 강조했던 이형일 동문(커뮤니케이션학부 97학번). 10년 전 모습 그대로 다큐멘터리를 통해 소통의 다리를 놓고 있는 이형일 동문이, 이번 학기에는 '저널리즘 제작실습' 강의를 통해 한동대학교에 소통의 다리를 놓으러 왔습니다. 이형일 동문의 이야기를 함께 들어볼까요?
Q. 안녕하세요! 먼저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를 소개할 때 주로 쓰는 말이 있어요. 평생 철없이 살아왔고, 지금도 철없고, 앞으로도 철없게 살고 싶은 이형일입니다. 현재 KBS 대구 방송국에서 프로듀서로 일하고 있고요. 피디(PD)로 일한 지는 21년째입니다. 누구보다 제 일을 사랑하고 너무 재미있어합니다. 직업과 관련한 꿈이 하나 있다면, 퇴직 직전까지 프로그램을 하나 만들다가 “나 이제 갈게.” 하고 퇴직하는게 제 작은 꿈입니다.
Q. 피디님께선 세 차례 강의를 통해 한동대학교 커뮤니케이션학부 학생들을 만나셨어요. 강의를 진행하며, 언론계 진출을 꿈꾸는 학생들에게 특히 어떤 말을 해주고 싶다고 느끼셨나요?
저는 여기서 뭔가 가르친다는 이름으로 서 있는 게 참 좋아요. 너무 감사하게도, 저는 한동대학교에 와서 많은 걸 배웠어요. 배운 내용을 활용하는 과정에서 많은 실패를 했고, 가끔가다 한 번씩 성공을 했어요. 그대로 두면 개인의 것으로 묻힐 이야기들이, 여기 있는 친구들하고 같이 나누면 가치 있게 쓰일 것 같았어요.
저는 개인적으로 이 친구들이 학생이라는 생각 이전에, 언젠가 나의 동료가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어요. 솔직히 미디어 파트에서 저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같이 일하고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아요. 크리스천도 많지 않고, 크리스천이지만 그냥 교회만 다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에요. 자신이 생각한 대로, 자신이 믿는 대로 영상 콘텐츠를 제작하겠다고 결심하는 사람은 더더욱 많지 않아요. 그렇다면 키워야죠. 그런 마음으로 여기 오고 있어요.
Q. 피디님의 강의 주제 가운데 하나가 '질문하는 사람'이었어요. 피디님은 스스로에게 어떤 질문을 가장 많이 하시나요?
이 질문이 사실은 제일 어려운 질문이었어요. 곰곰이 뒤돌아봤더니, 이 질문을 제일 많이 했더라고요. ‘하나님 왜 이러세요. 저한테 왜 이러세요.(웃음)’ 그다음으로 이어서 했던 질문들이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제가 뭘 해야 할까요.’라는 질문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 모든 질문을 아우르는 질문이 하나 있었어요. ‘저는 이 세상에 왜 태어났을까요.’라는 질문이었어요.
처음에는 그런 생각을 했어요. 제가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는 어떤 큰 사명이 있을 것이고, 그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 태어났고, 그것을 완수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런데 어느 정도 지나고 나니깐, “과연 하나님께서 나한테 ‘어떤 사명을 완수하면 너를 천국으로 부를 거야.’ 하고 여기 보내셨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러다가 ‘그러면 왜 내가 여기 왔을까.’라는 질문에, 지금 현재 갖고 있는 답에 이르게 됐어요. ‘좋은 사람’이 되라고.
하나님께서 뭔가 어려운 일을 나한테 맡기셨고 힘든 사명 같은 걸 나한테 주셨다면 그 사명을 성공하길 바라는 마음도 있으시겠지만, 그 성공의 여부와 상관없이 내가 좋은 사람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 일을 주셨을 것 같아요. 왜냐하면 하나님은 결과를 만드실 수 있는 분이니까.
그러면 하나님께서 나한테 왜 그 힘든 일을, 그 어려운 고난을 겪게 하셨을지 생각해 보면, 하나님은 저를 부르시는 거죠. 제가 천국에 들어갈 만한 좋은 사람, 조금씩 조금씩 성장해가는 좋은 사람이 되어서, 어느 날 당신과 만났을 때 기쁨으로 마주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저를 이 세상에 오게 하지 않으셨을까 생각해요. 그래서 제가 가장 많이 했던 고민, 가장 많이 했던 질문은 ‘나는 여기 왜 왔을까.’ 거기에 대한 답은, ‘좋은 사람 되려고.’입니다.
Q. 피디님 강의의 한 수강생은 피디님께서 진지하게 자기 일을 사랑하시는 태도를 기억했습니다. 장기간의 세월 동안 자기 일을 사랑할 수 있는 비결이 궁금해요!
다들 자기 능력대로, 혹은 상황에 따라 직업을 선택하고 살아갈 거예요. 저도 그중에 한 명이고요. 저는 참 다행스럽게도 막상 이 일을 정하고 났더니, ‘이 일이 나한테 너무 잘 맞는구나.’를 깨달은 경우라서 감사하죠.
제가 이 사회에 메시지를 던지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그런데 실질적으로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던질 수 있는 기회를 누구나 갖는 건 아니죠. 다행스럽게도 KBS라는 매체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한테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매체이고, 내가 노력함에 따라서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주면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매체이죠. 덕분에 내가 가지고 있는 자산보다 더 많은 영향력을 줄 수 있는 매체에서 일할 수 있게 돼서 너무나도 고맙고, 이 일이 그런 면에서 ‘나를 나보다 더 나스럽게’ 살아가게 해줘서 너무 고맙다는 생각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Q. 10년 전 인터뷰에선 피디님의 핵심 키워드로 '소통'을 말씀해 주셨어요. 최근 제작하신 작품 가운데 '소통'이라는 키워드가 가장 잘 반영된 작품을 소개해 주세요!
모든 작품에서 소통이라는 주제를 담으려고 해서 딱히 하나를 고르긴 쉽지 않은데, '박필근 프로젝트'를 예로 들어볼게요.
일단 소통에 대한 얘기를 하자면, 그 어느 때보다 소통이 중요한 시대로 바뀐 것 같아요. 왜냐하면 서로가 서로의 이야기를 안 듣기 시작했거든요. 개인적으로는 그러한 상황이 너무 안타까웠어요. 그래서 ‘소통이 가능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지금도 하고 있고요.
'박필근 프로젝트'는 처음에는 이런 생각으로 시작했어요. 삼일절이 되고 광복절이 되면 수많은 다큐멘터리들이 많이 나와요. 그런데 그런 다큐가 나올 때마다 저는 무슨 생각을 했냐면, ‘이걸 봐야 되는 사람이 과연 우리인가. 일본인들이 이걸 보고, 최소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정보와 일본인들이 가지고 있는 정보가 어느 정도는 맞아야 대화라는 걸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16살 때 일본으로 끌려가서 위안부 생활을 하다가 탈출해서 간신히 고향으로 돌아와, 지금 97세의 나이까지 살고 계시는 박필근 할머니의 인생을 여러 가지 콘텐츠를 활용해서 스토리로 만들었어요. 국악과 동화, 호사카 유지 교수님의 강의를 하나의 일본어 콘텐츠로 만들었죠. 해당 콘텐츠를 일본에 있는 일본 청년들에게 보여주었고, 그 친구들에게 “이걸 보았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우리가 이제부터 대화할 수 있는 접점을 마주하게 됐는지.”와 같은 질문들을 건넸어요. 그래서 '박필근 프로젝트'의 부제는 ‘일본인에게 들려주는 위안부 이야기’였습니다.
저는 일본인과 싸우고자 그 다큐를 만든 게 아니고, 대화를 위해 필요한 기본 조건을 맞추기 위해서 그 다큐를 만들었어요. 그러고 났더니 제가 하고 싶은 두 번째 속편이 생겼어요. 이번에는 ‘일본인이 들려주는 위안부 이야기’를 하고 싶어졌어요.
우리는 잘 모르지만, 일본인들 중에는 자신들의 과거에 대해서 여러 가지 고민을 하고 해법을 찾아가는 사람들이 있어요. ‘일본인들이 얘기하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한국인들한테 전한다면, 원작과 속편을 통해서 균형을 맞출 수 있지 않을까. 서로 대화할 수 있다면, 들려주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가 들어도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기획 중이에요. 이처럼 저는 모두가 서로에게 귀를 기울이고 얘기할 수 있는 그런 프로그램들을 만들어서, 앞으로도 계속 소통으로 문제를 풀어나가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피디이고 싶습니다.
Q. 다큐 제작을 위해 다양한 사람들과 협업하다 보면 생각의 차이와 이로 인한 소통의 어려움이 발생할 것 같아요. 그러한 상황을 타개하는 피디님의 노하우를 알려주세요!
타개하지 못했어요. 여전히 어렵고요.(웃음) 그런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는 하나의 노하우가 있다면 저도 배우고 싶을 정도고, 매번 고민하고 힘들어해요.
그런데 그런 것들을 해결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은 없지만, 한 가지 필요한 덕목은 있는 것 같아요. ‘용기’ 같아요. 나와 다른 사람과 함께 일을 하는데 주저하지 않는 용기. 그런 용기를 계속 가질 수 있다면 더 나은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음과 동시에 그들과도 소통할 수 있는 기본 덕목을 갖추게 되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그래서 내 의견에 너무나도 반대하는 누군가가 스태프로 있으면,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해요. ‘이 사람은 나를 도와주려 온 거야. 나를 반대하러 온 게 아니고, 나를 좀 더 크리에이티브하게 만들어 주려고 여기서 반대하는 거야.’ 이런 생각을 갖고, 동시에 ‘나 또한 그를 창의적으로 만들어 줄 수 있어.’라는 생각을 하는 편인 것 같아요.
Q. 피디님께서 지금 피디님을 인터뷰한다면, 어떤 질문을 하고 싶으신가요?
아까 “퇴직 직전에 프로그램을 만들고 딱 끝나는 시점에 퇴직하고 싶다.”라는 얘기를 했잖아요. 그때 마지막으로 만들고 싶은 프로그램이 무엇인지 질문할 것 같아요. 평생을 만들고 싶어서 계속 꿈꿨는데 아직 만들지 못한 프로그램이 하나 있어요. 제목은 ‘황색 예수’. KBS에서 꼭 하고 싶어요.
사도 바울은 동방으로 전도를 나가다가 어느 순간에 멈췄어요. 돌아가라 그래서. 하지만 그 전도의 행렬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어요. 동방으로 계속 이어나갔죠. ‘경교’라는 이름으로 동방으로 계속 가고, 천년 전 중국에도 그리고 우리나라 신라까지도 이어져온 흔적들이 있어요.
저는 무엇을 보고 싶었냐면, 우리 기독교는 서양 문화의 색채를 너무나도 많이 가지고 있어요. 그러면 ‘동양적인 이해의 체계 안에서 예수는 어떻게 받아들여졌을까?’라는 것들을, 과거에 있었던 자료들을 가지고 추적해 가고 싶었어요. 그리고 그렇게 만난 동양의 예수와 서양의 예수를 비교해 가다 보면, 어느 순간 우리의 테두리 때문에 벌어진 오류의 흔적들을 다 벗고 예수님의 정수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Q. 마지막으로, 한동대학교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으신 말 부탁드립니다.
한동대학교는 정말 좋은 학교입니다. 저한테는 더더욱 좋은 학교였어요. 왜 좋은 학교였냐 하면, 저는 제가 믿는 것과는 다르게 배우고 일하는 게 너무 싫었어요. 그런데 한동대학교는 나의 믿음을 그대로 인정해 주면서, 그 믿음을 바탕으로 공부할 수 있게 해줬어요. 기독교 세계관을 바탕으로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방법들을 고민했고, 세상의 다양한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어떻게 전달해야 되는지를 배웠고, 그것을 바탕으로 피디로서 계속 도전하고 있어요.
최근에 드는 생각인데, 기독교인이 너무 수세에 몰린 자세로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요즘 사회 분위기가 기독교인을 심지어는 ‘개독교’라고 부를 정도로 굉장히 몰려 있잖아요.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방어하는데 급급한 사람들이 아니에요. 우린 승리한 사람들이고, 언젠가 저 마지막에 승자로서 있을 사람들이죠. 그래서 으스대자는 얘기가 아니고, 여유를 갖자고요. 세상을 품어줄 만한 여유를 갖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믿음대로 살되, 방어하지 말고. 품어주고 살고. 여유를 가지고 앞으로 계속 걸어 나간다면, 실패해도 승자고 성공해도 승자니 걱정하지 말고 끝까지 나아가길 바랍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참 좋은 기회를, 좋은 시간을 누리고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