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페이지로
섬기는 사람들 - 기계제어공학부 05학번 최윤석

봉사활동과의 인연
   제가 소속된 풍물동아리인 한풍에서는 포항 시내의 여러 기관들이나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행사에서 공연을 하는 것으로 봉사활동을 하게 됩니다. 저도 2학년 1학기에 한풍 소속으로 여러 곳에서 공연을 하게 되었는데요, 아마 그 학기 마지막 행사였던 것 같습니다.
    기분 좋게 공연을 끝내고 나오는데, 행사를 준비하셨던 기관에서 저희에게 수고했다면서 약간의 수고비를 쥐어주셨습니다. 얼떨결에 받아 들고 나와서는 고민이 많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고민을 하다가 봉사자가 물질적인 대가를 받는다는 것이 스스로 받아들여지지 않아서 일부러 최종보고서를 제출하지 않고 그냥 F를 받았던 적이 있습니다.

사회봉사 담당선생님 말씀으로는 최윤석 학생이 다른 사람들이 잘 가지 않는 봉사지를 골라서 간다고 하던데,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저의 대학생활은 어떻게 보면 '신앙인으로서 믿음과 생활이 합치된 삶이란 어떤 모습일까?를 묵상하고 고민하는 시간의 연속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봉사라는 것이, 내가 필요한 것을 하는 게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어디일까?'하고 곰곰이 생각을 하다가 신청자가 없거나 처음에 봉사하기로 한 신청자가 사정상 빠지게 된 곳을 가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제가 무엇을 하게 될 지는 모르지만, 최소한 그곳은 누군가의 손길이 필요한 곳일 테니까요.

그렇게 해서 작년 1학기와 여름계절학기에는 경주 예티쉼터에, 그리고 2학기에는 동해지역아동센터에 갔었고, 지금은 학산지역아동센터에서 중학생들에게 수학을 가르치는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예티 쉼터에 처음 갔을 때, 입구의 쇠문이 잠겨있어서 약간 이질감 같은 게 느껴졌었습니다. 이 안에 있는 분들이 꼭 철창 안에 갇힌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구요. 하지만 그곳에 있는 분들의 빨래를 해드리고 목욕도 시켜드리면서 정도 많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여름계절학기로 갔을 때는 4박5일을 내리 있다 왔었는데, 그때는 일하러 온 게 아니라 꼭 제가 어디 쉬러 온 것 같은 느낌도 들었습니다.
   물론, 예티에서의 활동이 쉽지는 않습니다. 거기 계신 분들 중에는 행동을 예측할 수 없는 분들도 있어서 긴장해야 할 대도 있지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서 지금 생각해보면, '봉사는 이벤트가 아니라 삶' 라는 것을 그곳 원장님과 사모님이 보여주셨던 것 같습니다.

한창 사춘기인 중학생, 그것도 여중생들을 가르치려면 쉽지 않을 것 같은데, 학생들을 지도하는 것은 어떤가요?
   대학생이 되고 나서 과외는 많이 해봤습니다. 센터에서 아이들 가르치는 것은 어디까지나 봉사활동이지만 그래도 돈 받고 과외 하는 것 같은 마음으로 가르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한가지 아쉬운 것이 있다면 아이들을 가르칠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공부에 흥미를 붙이고, 성적도 좀 오르고 하려면 주2회 이상 꾸준하게 관리해줘야 하는데, 아이들도 바쁘다 보니 그렇게 하기가 힘드네요. 남자애들이면 학교에라도 불러서 가르칠 텐데, 여학생들이라 그러지도 못하구요.
   하지만, 결국 이 아이들이 변한다면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저는 그저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기 위한 통로라고 생각합니다.

'봉사'에 대해서 본인의 생각을 한동 가족들과 나누면 좋겠습니다.
    몇 년 전부터, 제 안에 높아지고 싶어하는 마음이 들어차고 있는 것이 느끼게 됩니다. 돈을 많이 벌고 싶고,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싶어하는 그런 생각들 말이지요. 그런데 또 주위를 둘러보면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도 많이 보게 됩니다. 세상은 왜 평등하지 않을까? 왜 사회는 평평하지 않고 불공평함이 존재하는 걸까?
   이런 고민을 하는 동안, 하나님께서 작은 깨달음을 주셨습니다. 그 모든 것이 창조의 섭리라는 것이지요. 바람이 부는 것은 기압이 높은 쪽과 낮은 쪽이 있어 그 기압차이를 맞추기 위해서이고, 삼투압현상도 농도가 높은 곳과 낮은 곳 사이의 농도차이를 맞추기 위해서 인 것처럼, 사람 사는 세상이 flat하지 않은 것도 역시 하나님의 뜻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세상에서 높고 낮음, 많고 적음의 차이를 줄이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피조물인 나에게 주어진 소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