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아이티에서 대지진이 발생했을 때, 아이티의 참상을 보면서 많은 한동인들은 유난히 더 걱정했었습니다. 아이티 출신의 유일한 국내 유학생인 프로펫이 한동에서 같이 공부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 한동인 중에 이 안타까운 심정을 품고 아이티의 구호현장을 다녀온 친구가 있어 만나보았습니다. 국제어문학부 05학번 김든 학우입니다.

 

사실, 지난 2009년에는 일년 동안 휴학을 하고 프랑스로 어학연수를 다녀왔습니다. 국제정치학을 전공하는데 나중에 프랑스어가 필요할 것 같아서였지요. 9개월 간의 어학연수를 마치고 나서,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국제노동기구(ILO)에서 석달 동안 인턴을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제 또래 젊은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국제기구에서의 인턴생활 동안, 정말 환상적인 근무 환경 속에서 제가 읽었던 보고서들 속의 개발도상국의 노동환경들은 너무나도 열악하다는 사실 속에서 엄청난 괴리감을 느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마음 속에 해결하지 못한 괴리감을 안고 한국에 돌아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티에서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어떻게든 아이티 현장에서 도움을 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여러 기관들을 수소문해보다가 마땅한 길이 보이지 않아 거의 포기하고 있었는데, ‘글로벌케어’라는 의료NGO에 소속된 저희 교회 집사님 한 분께서 그 팀의 아이티 행에 동행하겠냐고 하셔서 같이 가게 되었습니다.
출국까지 5일밖에 시간이 없어서, 가겠노라고 말씀을 드리고는 당장 국립의료원으로 가서 세가지 예방주사를 한꺼번에 맞고는 속이 메슥거려서 고생했지만, ‘갇힌 자를 풀어주고, 굶주린 자를 먹이는 자가 되자’는 저의 평소 신념을 실행할 수 있는 참 좋은 기회라는 생각에 꾹 참고 견딜 수 있었습니다.

 
제가 동행하게 되었던 ‘글로벌케어’는 의사, 한의사, 간호사들로 구성된 의료구호단체입니다.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일차적인 지원을 해줄 수 있는 전문의료인들이지요. 의료적인 부분에 전혀 문외한인 저는 행정요원으로 섬겼습니다. 주로 현지의 난민캠프들을 찾아 다니면서 의료혜택이 필요한 사람들의 규모와 피해 정도를 파악해서 자료로 만들고, 이를 토대로 의료단을 안내하는 것이 저의 주된 임무였습니다. 1차 구호팀과 함께 출국해서 5일을 현지에서 같이 활동하고, 다음 팀이 들어오기까지 약 보름 정도 시간이 있었는데, 그 기간에는 다음 팀이 사역할 곳을 물색하고 다녔습니다. 제가 방문한 난민촌마다 인구를 파악하고 상황을 정리하는 리더들이 있었는데, 그들을 만나 그 마을의 피해상황과 의료수요에 대해 이야기하고 일정을 조정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작년에 배운 프랑스어를 꼭 필요한 곳에 쓸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혼자 포르토프랭스와 인근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많이 놀랐던 것은, 어느 정도 교통이 닿는 지역의 난민캠프에 조차도 여전히 구호의 손길이 닿은 적이 없는 곳이 많았다는 점입니다. 대부분의 난민촌들이 주로 산에 있어서 사람들이 찾기 힘들고, 위치를 찾는다 하더라도 교통이 불편해서 들어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아직까지 구호물자를 구경도 못한 곳이 많다는 것이지요. 여러 난민캠프를 돌아다니며 정보를 모았지만, 의료진이 활동할 수 있는 시간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거리가 먼 캠프는 그 필요를 알고 있어도 갈 수가 없었습니다. 모두가 힘든 상황에서 모두가 도움을 필요로 하는데, 도와주겠다고 온 사람 입장에서 우리가 어디까지는 갈 수 있는지 내 나름대로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는 사실이 많이 안타까웠습니다.
 
아이티에는 지금 전세계에서 여러 모양으로 구호품과 봉사자들이 몰려들고 있지만 현지의 구호물자는 여전히 부족해 보였습니다. 제대로 된 텐트도 없어 아직도 맨바닥에서 자는 사람들도 많구요. 3월부터 우기가 시작된다고 하는데, 지금 상태가 개선되지 않는다면 난민촌에서 생활하고 있는 사람들의 위생과 보건이 큰 문제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들은 여전히 정신적인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았습니다. 저는 현지의 선교사님 댁에서 생활했는데, 그 선교사님이 교회에서 운영하시는 고아원 아이들 중에는 아직도 두려움으로 건물에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 생활하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아무리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고 타일러도 문 안으로 들어가지 않겠다고 버티더군요.
아이티에서는 여전히 인신매매와 아동노동이 성행하고 있고 불법총기류도 많이 풀려 위험한곳이 많습니다. 제가 방문했던 곳 중에 ‘게토’같은 곳이 있었는데, 현지의 미군들도 위험해서 이곳에는 접근을 하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함께 계시던 목사님이 정기적으로 그 곳에서 사역을 하셔서 몇 번 따라갈 기회가 있었습니다. 한번은 현장의 상황이 너무 좋지 않아 입구에서 돌아온 적도 있었다. 그때, ‘이렇게 구호활동 하다가 진짜 죽을 수도 있겠구나.’, ‘목숨을 내어놓고 활동한다는 게 이런 느낌이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봉사’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전에는 ‘봉사’에 대해 좀 피상적으로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아이티에서 한달 동안 경험한 ‘봉사’는 한마디로 힘들었습니다. 말 그대로, 정말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이전의 저처럼 그저 멋으로, 감상적으로 가볍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아니더군요. 경우에 따라서는 정말 죽을 수도 있다는 걸 직접 느꼈습니다.
물론 자기 자신을 위하기 보다는 다른 사람들을 돌아보는 봉사행위는 정말로 아름답고 숭고한 일입니다. 그리고, 이런 봉사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뜨거운 마음’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동시에 봉사 현장에 대한 지식과 정보 등 여러 부분에서 준비가 된다면 우리가 기대하고 준비했던 것보다 더 큰 사랑을 전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한동인들의 남을 위한 배려의 관점과 범위가 더 넓어지면 좋겠습니다. 저는 이번 일을 통해 세상에는 우리가 생각하고 피상적으로 알고 있는 것보다 힘든 상황에 놓인 사람들이 훨씬 많다는 걸 알게 되었거든요.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을 직접 찾아 갈 수 있는 용기와 노력이 한동 공동체 안에서 더욱 크게 일어나면 좋겠습니다.

지금 아이티에서는 학교 건물이 모두 무너져서 학생들이 어떻게 공부를 할 수 있는 도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공부를 하고 싶어도 학교에 갈 수 없는 아이들이 거리로 내몰리고 있고요. 길에서 만난 제게 이곳의 아이들은 해맑은 웃음을 보여주지만 그들의 맑은 웃음 속에 꿈이 보이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혹시 여건이 허락된다면, 여름 방학 동안에 우리 한동인들이 가서 그곳의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전해 줄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