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달에는 지금까지 118번의 헌혈을 한 ‘헌혈의 여왕’,
  박진선 조교 선생님을 만나보았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학교로 헌혈차가 종종 왔었는데, 그때 처음으로 헌혈을 했습니다. 헌혈을 할 수 있는 나이가 만 16세부터인데, 저는 그때부터 한 셈이네요.  
고3때도 헌혈차에서 한번 헌혈을 한 후부터는 교회 친구하고 같이 헌혈의 집을 ‘다녔습니다.’ 이렇게 몇 번 헌혈을 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거의 습관이 돼서 거의 매달 헌혈을 했습니다. 일반적인 전혈 헌혈의 경우, 한번 헌혈을 하면 두 달 후에나 가능한데, 제 경우는  혈장 헌혈을 주로 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자주 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친구와 둘이서 헌혈하러 다니다가, 제가 다니던 교회에 헌혈을 자주 하는 사람들을 알게 돼서 나중에는 다섯 명이 헌혈동아리를 만들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 중에는 지금까지 250번 헌혈한 분도 있구요.

 

한번은 헌혈이 끝나고 나서 충분히 지혈을 하지 않고 일어나는 바람에 침대시트를 정리하다가 팔에서 피가 흐른 적이 있었습니다. 선홍색 피가 줄줄 흘러내려서 시트며 담요가 제 피로 벌겋게 물들어서 간호사 언니들도 기겁을 했지요. 또 몇 년 전에, 주말에 학교에 올 일이 있었는데, 시계를 보니 학교버스시간까지 조금 여유가 있길래, ‘헌혈이나 한번 하고 가지 뭐.’ 하고는 헌혈의 집에 갔었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유난히 헌혈하는 분이 많아 시간이 걸리는 바람에 버스 시간에 겨우 맞출 수가 있었어요. 버스를 놓치지 않으려고 허겁지겁 달려왔다가 버스 문 앞에서 갑자기 눈앞이 깜깜해지고,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제 말은, 헌혈을 하고 나면 충분한 휴식과 안정이 중요하다는 뜻이지요.

 

2007년이었네요. 포항MBC에서 헌혈을 많이 하는 사람들을 찾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거기서 제가 ‘포항에서 헌혈을 제일 많이 한 여성’이라면서 학교로 찾아왔었습니다. 저는 아무 것도 모르고 있다가 갑자기 방송국에서 오셔서 얼떨결에 인터뷰를 했었지요. 그 날 이후로 한동안 친구들에게 연락도 오고, 몇몇 교수님들이 “TV 잘 봤다.”고 한마디씩 하시기도 해서 조금 민망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헌혈의 집 간호사 언니들 말을 들으니 사실은 제가 제일 많이 한 건 아니고, 두 번째였다고 하더군요. 1등 하신 분이 극구 고사하시는 바람에 제가 대신 섭외되었다면서요.

 

처음부터 특별히 심오한 뜻을 가지고 시작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재미로 헌혈을 하고, 그러다 주위에서 누가 아프다 그러면 헌혈증 모아서 나눠주고… 그냥 그 자체를 즐겼었어요. 그래서, 100번째 헌혈증만 기념으로 가지고 있고 남아있는 헌혈증이 없어요. 가진 게 있으면 그냥 다 나누어줬기 때문이지요.

전에는, 하나님이 내게 주신 것 중에 남을 위해서 내가 뭔가 할만한 재능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헌혈을 하고, 또 그 헌혈증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고 하는 경험들 속에서, ‘피는 내 안에 있는 걸 그냥 뽑아내기만 했을 뿐인데, 누군가에게는 큰 도움이 되는구나.’라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몸 속의 피는 시간이 지나면 어차피 죽는 건데, 그걸 헌혈의 형태로 나누면 그게 누군가에게는 생명이 된다는 사실이 오히려 감사하게 여겨졌습니다.

사실, 저도 주사바늘을 많이 무서워합니다. 하지만, 헌혈을 자주 하다 보니 헌혈바늘은 그렇게 무섭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요. 일반 주사바늘보다 훨씬 더 크고 무섭게 생겼는데도 말이지요.

 

저는 많은 한동인들이 헌혈에 동참하면 좋겠습니다. 큼직한 주사바늘이 좀 무서워 보여서 그렇지, 헌혈은 참 아름답고 보람된 일입니다. 특히 요즘은 신종플루 때문에 헌혈하는 사람이 줄어서 혈액 수급이 힘들다고 하는데, 이럴 때일수록 한동가족들이 따뜻한 마음을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