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까지 ‘낫 놓고 기역 자’도 몰랐던 문맹 탈북민이 글을 배운 지 10년 만에 영국 명문대 대학원에 합격해 화제가 되고 있다. 오는 가을 영국 셰필드대 국제관계학 대학원에 진학할 예정인 탈북민 김성렬(30·사진) 씨가 그 주인공이다.
김 씨는 6일 문화일보와의 통화에서 “굶어 죽을 뻔한 고비도 넘겼고 처형당할 뻔한 고비도 넘겼다”며 “목숨을 걸다시피 열심히 공부했더니 기회가 찾아왔다”고 말했다.
지금이야 대학 교육까지 마치고 석·박사 과정까지 바라보고 있지만, 남한에 오기 전까지 김 씨 인생은 고난과 역경이 뒤섞인 한 편의 영화 같았다.
북한 함경북도 청진 출신으로 중학교 1학년 때 학업을 중단한 김 씨는 식량난 때문에 음식을 구걸하는 이른바 ‘꽃제비’ 생활을 이어가면서 처음 탈북을 꿈꿨다. 김 씨는 “1주일 동안 오직 물만 먹고 지낼 때에는 ‘이러다간 굶어 죽을 수 있다’는 공포에 시달렸다”며 “‘이렇게 죽나, 저렇게 죽나 차라리 뭔가를 시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김 씨는 1997년 3월 어머니, 누나와 함께 살얼음이 언 두만강을 건너 첫 탈북을 감행했지만 기대했던 ‘차이나 드림’은 없었다. 중국 옌볜(延邊)과 허베이(河北)성을 떠돌아다니며 탈북 주민이라는 약점에 보수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착취를 당하기 일쑤였다. 급기야 2000년 3월에는 중국 공안에 체포돼 다시 끌려간 북한에서 공개처형까지 당할 위기에 처했다. 김 씨는 “신의주 수용소로 끌려갔을 때는 죽음을 각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그때 마침 6·15 남북공동선언이 발표되면서 경제적 탈북자에 대한 석방령이 떨어진 것은 천운이었다.
석방 뒤 1년 후인 2001년 새로운 기회를 꿈꾸며 국경을 넘은 김 씨는 중국 톈진(天津) 국수공장에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었지만, 제때 배우지 못해 ‘까막눈’인 자신의 신세가 안타까웠다. 김 씨는 “우연히 잡힌 라디오 주파수에서 ‘한국에 오면 탈북자에게 교육 기회를 준다’는 말을 듣고 남한행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가족과 무사히 한국에 도착한 김 씨는 그야말로 죽을 각오로 공부해 1년 3개월 만에 초·중·고 검정고시를 통과했고 2007년에는 한동대에 입학했다. 더 큰물에서 공부하기 위해 종교단체의 후원으로 1년간 미국에 어학연수도 다녀오고 미국 국무부 장학생으로 선발돼 6개월간 교환학생 경험을 쌓기도 했다. 김 씨는 “남북한과 중국, 미국 체제를 두루 거친 경험을 되살려 국제정치 전문가로서 한반도 통일에 기여하고 싶다”며 “통일은 미래 사회의 큰 기회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고민도 있다. 당장 1년에 4800만 원에 달하는 학비와 생활비를 마련할 수 없어 후원자를 구하고 있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김 씨는 “지금까지 그래 왔듯 기회는 반드시 온다는 신념으로 이겨낼 것”이라고 각오를 다졌다.